카테고리 없음

[플라톤 국가 - 1] 국가에서의 정의란 무엇인가

sohyunkim 2025. 10. 30. 11:25

 

이번에 읽은 책은 [플라톤 국가]이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와 다른 인물들이 케팔로스의 집에서 나눈 대화의 형태로 진행된다. 대화 형식의 글이라 내가 논의가 이뤄지는 공간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플라톤 국가(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플라톤현대지성
 

이는 마치 토론의 청자로 참여하는 듯한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양측의 주장을 비판적 생각하게 하여 저자의 주장에 따라가는 것이 아닌 스스로 옳고 그름을 생각하게 된다.(책을 읽으며 이렇게 논리 흐름이 맞는지 검증하려 한 것은 처음이다.) 아직 다 읽은 건 아니지만, 국가의 시작을 오늘 작성해 보려고 한다.

 

 

[플라톤 국가 - 1] 국가에서의 정의란 무엇인가

이번에 읽은 책은 [플라톤 국가]이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와 다른 인물들이 케팔로스의 집에서 나눈 대화의...

blog.naver.com

 


논의는 케팔로스의 맞아들 폴레마르코스의 "정의는 친구에게는 잘해주고 적에게는 해를 입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이 주장은 결국 "정의로운 사람이 해를 입힐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쉽게 끝이 난다.

 

이에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는 강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트라시마코스에 주장을 정리하면, 통치자들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법을 만들어 정의라 공표하기 때문에, 정의는 강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통치자들이 실수하여 자신들에게 해가 되는 일을 정의라고 한다면?"이라고 반문한다.

 

이에, "통치자(전문가)로 정의된 전문가는 자신의 일에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들로, 통치자들이 자신에게 해가 될 일을 정의라고 할 일이 없다"라고 말한다.

 

소트라테스는 전문가가 행하는 일이 예를 들어 의사가 행하는 의술은 결국 대상에게 이득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를 바탕으로 통치자(전문가)는 통치의 이익이 피지배자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려야지 진정한 전문가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책에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여러 예시들이 있어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쉽게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반박할 수 없게 되는데, 비판적으로 생각하려 했던 내가 얼마나 쉽게 홀렸는지 알게 된다. 하지만 결국 이 예시를 바탕으로 다시 반박할 수 있게 된다. 앞서 "의사의 의술은 대상에게 이롭다"라는 주장을 바탕으로 전문가의 행위는 항상 대상에게 이롭다는 주장으로 이어졌으나, 이는 결국 의사라는 전문가로부터 예시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소매치기범이나 다른 악한 행위의 전문가라면 항상 전문가가 대상에게 이롭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부정의한 통치자(전문가)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행위로 "정의"를 정의하는 것도 말이 될 것이다.

 

전문가를 정의하는 것은 잠시 뒤로하고, 그래서 통치자, 관직에 있는 사람에게 보수(돈, 명예 등)을 주는 것은 그들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와 같은 이유에서 통치자에게 돈이랑 명예와 같은 보수를 지급해야 하고, 만약 그가 통치를 거절하는 경우 벌을 내려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게, 보수는 이해를 해도, 통치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벌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일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진정으로 정의로운 통치자라면, 자신이 보수를 받고 통치를 한다는 행위 자체를 부정의한 것으로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이들을 강제하려면 벌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벌은 "자기보다 못난 사람에게 통치를 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가혹한 벌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에서 결국 정의로운 사람은 정치에 참여할 수밖에 없어진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정의로운 사회에 시민으로 있기 위해서는 '이 사람이 과연 이 사람이 정의를 바탕으로 벌을 피하기 위해 정치에 참여했는지, 아니면 부정의로운 보수를 위해 정치에 참여했는지'를 판단하는 능력을 요구받는다.


대화는 소크라테스의 작은형 글라우콘의 "정의를 좋게 여겨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행하고, 그런 행동이 결코 불합리한 게 아니다"로 이어진다. 여기서 글라우콘은 부정의를 옹호하는 인물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에게 정의를 구해줄 것을 요청하며 최대한으로 부정의한 삶이 정의로운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산다는 주장을 펼친다.

 

우선 글라우콘은 불의를 당한 자의 손해가 불의를 행한 자의 이익보다 크며, 사람들은 불의를 서로 행하기도, 당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결국 사람들은 서로 불의를 행하지 않겠다는 계약을 맺게 되고 이것이 정의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이 대목에서 홉스의 국가론이 떠올랐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자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인들이 자신의 자연권을 절대 권력에 양도하고 사회 계약을 맺어 국가를 탄생시킨다는 내용인데, 매우 흡사하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는 결국 사회적 계약이 없어 서로의 자연권(목숨)이 위협받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사람들은 자연권보다 낮은 권리를 희생하여 자연권을 보장받는 형태의 국가라는 계약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이 책도 다시 읽고 서평을 작성해야겠다.

 

다시 돌아가서, 이러한 정의의 본질에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정의를 행하는 것은 불합리한 것이 아니게 된다.

 

이러한 주장을 끝으로 글라우콘은 소크라테스에게 "오직 정의는 정의로운 자에게 어떻게 이롭고, 불의는 불의한자에게 어떻게 해가 되는지" 설명을 부탁한다.

 

소트라테스는 우선 "정의는 한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나 국가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라고 말하며 우선 더 넓은 차원(국가)에서 정의를 논하고, 국가에서 정의된 "정의"가 좁은 차원의 개인에게 적용 가능한지를 살펴보자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 책을 "정의"에 대한 내용을 바라고 읽은게 아니었다. 국가의 탄생, 지도자의 덕목과 같은 것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이상적인 국가에 대한 논의가 정의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에 어찌 보면 정의가 철학에 미치는 영향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정의를 우선 국가 차원에서 논의하고 이를 개인에서 적용하겠다는 내용을 마지막으로 블책을 작성하기 위해 일단 책을 덮었는데, 빨리 계속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주에는 이후 본격적인 국가에 대한 내용을 읽고 정리해서 올려야겠다.

 

 

[플라톤 국가 - 1] 국가에서의 정의란 무엇인가

이번에 읽은 책은 [플라톤 국가]이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와 다른 인물들이 케팔로스의 집에서 나눈 대화의...

blog.naver.com